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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소요산(444m)

배낭여행(김학철) 2009. 9. 8. 21:30

고창 소요산(444m) 산행안내

 

◈ 산 행  지 : 전북 고창 소요산(444m)

◈ 산행코스 : 연기교-연기마을-동릉-전망대-연기재3거리-임도 소요사-소요산-삼거리-검은기와집-연기마을(원점회귀) 

◈ 산행시간 : 5시간(9km)

◈ 소요산 소개

소요산은 고창의 젖출 인천강을 사이에 두고 높이가 같은 선운산 경수봉과 마주보고 있어 형제봉 또는 걸출한 문장가들이 많이 배출됐다는

의미로 문필봉이란 별칭을 얻었다. 보천교의 창시자 차경석, 인촌 김성수, 미당 서정주 등이 그 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

동학혁명의 주인공 전봉준 장군 부친이 소요산 암자에서 글공부하며 길몽을 꾸고 전 장군을 잉태했다고 전해온다.

<흥덕현지>에는 옛적에 소요산 산정에 기우제를 지내던 천제단이 있었고, 북쪽은 취은처사 황세기와 귀암 황재중 부자가 시를 읊던 명옥대

와 유선대, 남쪽은 김하익의 효행일대기를 담은 백허당이 새겨진 효자바위가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소요사는 풍수지리상 제비가 깃든 연소혈로 소요산 목울대  부근 (동쪽 암벽 아래)에 자리한 사찰로  백제 위덕왕  때 소요대사가  개창해서

얻은 이름이다. 신라 경덕왕 때 고승인 연기조사가 화엄사 중창과 고창의 소요사 등 많은  사찰을 창건했으며,  출생지가  고창  흥덕이라는

설과 하늘에서 연을 타고 우리나라에 왔다는 설도 있다.    정현도 인천강지킴이 회장의 말에 따르면 연기저수지 옆에는 연기조사가 창건해

한때 38개의 암자를 거느렸던 연기사 터가 있다고 한다.

원광대 유승훈 교수에 의하면 조선 중기의 고승 소요대사의 부도를 백양사에서 발견했는데 추사 김정희가 쓴 소요사란 현판이 분실돼 안타

깝다고 했다. 소요사는 조선시대 중기까지 대대로 이름난 승려들이 배출된 절로 정유재란과 6.25 때 소실되었다가 최근에 다시 지었다.

소요대사는 담양 출신으로 13세에 백양사에서 불도에 입문하여 서산대사에게서 신지를 깨우쳤으며 백양사 주지와 조실을 지냈다.

저서로 <소요당집>이 있고 그의 부도는 장성 백양사, 담양 용추사, 지리산 연곡사 등 세 곳에 있다.

정상에서 북쪽은 곰소만과 죽도 너머로 드넓은 서해와 내변산의 산줄기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선운산이  한눈에

잡히고, 동쪽은 가까이에는 화시산, 그 너머로 내장산, 방등산, 입암산이 아스라이 마루금을 그린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무가 하얗게 밀려

오며 소요산을 감싸는 장관을 연출한다.

북쪽은 미당 서정주가 유년기 고향사람들의 풍속을 산문양식에 담은 여섯 번째 <질마재 신화>의 무대다.

산줄기는 호남정맥 내장산 옆 순창새재 부근 530봉에서 서쪽으로 갈려나온 영산기맥이 뿌리다. 영산기맥은 입암산을 지나 방장산 고창고개

에서 북쪽으로 지맥 하나를 내려놓는다. 호남지리탐사회에서는 그 지맥을 소요지맥이라 부르기로 했다. 사실 터재와 오봉을 지나면 또 다시

두 갈래를 친 뒤, 화시산을 지나 선운산 경수봉과 마주보고 솟은 산이 소요산이다.

속설에 의하면 두 개의 산중에서 하나가 흥하면 그 하나는 쇠퇴한다고 한다.

물줄기는 모두 인천강 하류를 이루다가 서해의 곰소만에서 살을 섞는다. 지도상에는 인천강을 주전천이라고  잘못 표기하고 있다.


 

◈ 미리본 사진     

 

소요산 전경

 

소요사

 

소요사 종각

 

소요산 수직암릉 

 

◈ 산행지도